[오바마 2년차] 시련의 오바마 "민심 잡아라" 총력
취임 후 처음으로 행한 국정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의 상당 부분을 실업난 해소 등 경제문제에 할애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으로 야당 의원들과 TV공개 토론도 벌였다. 집권 2년 차를 맞아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국정 운영을 살펴본다. ▷경제가 무소속 이반 불러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한 이유에 대해 무엇보다 경제난에 대한 미국민들의 불만을 꼽고 있다. 대규모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크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미국민들의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높은 실업률이 이런 불만을 부추기는 주요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현재 10%대를 기록하고 있고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이런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무소속 유권자들의 이반도 지지율 하락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매사추세츠 보궐선거를 비롯한 앞서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이유도 무소속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대한 무소속 유권자들의 거부감이 큰 것으로 풀이했다. 전통적으로 무소속 유권자들은 대규모 재정 지출을 지지하는 이른바 '큰 정부' 정책에 반대입장을 보여왔다는 설명이다. 정치권 전반에 대한 냉소주의도 오바마 행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오바마는 대선 시절 판에 박힌 이념논쟁을 초월한 정치를 하겠다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이미지가 많이 손상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정연설 대부분 경제에 할애 1월 27일 오바마 대통령이 행한 국정연설의 최대 화두는 경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내용의 거의 3분의 2를 일자리 창출 등 경제난 해소에 할애했다. 70여분간 진행된 이날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강한 톤과 직설적인 표현들을 사용하며 경제 살리기를 다짐했다. 대신 취임 후 야심 차게 추진해온 의료보험 개혁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렇다고 오바마 행정부가 의료보험 개혁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날 연설에서 의료보험 개혁의 중단 없는 추진을 다짐하며 의회의 협력을 촉구했다. 다만 여론을 감안해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의료보험 개혁에 대해 미국민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CNN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8%가 반대한다고 답했고 38%만이 찬성한다고 답했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국면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이 민심불안의 주원인인 경제난 해결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밝힌 만큼 민심회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여론도 일단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CBS 방송이 연설 직후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3%가 연설내용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국정연설 후 오바마에 대한 지지도가 소폭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 끌어안기' 적극 나서 오바마 행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첫 조치로 신규 직원을 채용하는 중소기업에 대해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의 330억 달러 규모의 중소기업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올해 직원을 새로 고용하는 기업들에게 신규 직원 한 명당 5000달러의 세액공제혜택을 제공하고 사회보장세를 환급해 주는 내용이 골자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와 더불어 중산층 가정에 대한 지원도 늘릴 계획이다. 민심회복을 위해서는 중산층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중산층 끌어안기'에 적극 나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매사추세츠 선거 다음날 참모들에게 민주당이 중산층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며 대책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매사추세츠 선거 후 ABC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바로 눈 앞에 닥친 금융위기를 해결하느라 보통 국민들과 교감에 소홀히 했다"고 시인했다. 백악관은 매사추세츠 선거 닷새 뒤인 지난 1월 25일 중산층 가정에 대한 세제혜택을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안은 연 소득 8만5000달러 이하 가정에 대해 부양자녀 세액공제 혜택을 현재보다 2배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안은 또 부양자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현재의 20% 소득계층에서 35%로 상향 조정하도록 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중산층 끌어안기 노력은 백악관 밖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오바마는 매사추세츠 선거 후 오하이오 주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제조공장을 찾아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대형 은행 규제로 민심 달래기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들은 대형 금융회사들에 대한 막대한 구제금융 지원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경제위기의 주범인 대형 금융회사들을 살리는 데만 급급할 뿐 실업난 해소 등 서민경제를 챙기는 데는 뒷전이라는 불만이다. 워싱턴 포스트와 ABC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8%가 금융회사들의 무분별한 투자가 경제위기를 초래했다고 답했다. 설상가상으로 자금난으로 정부로부터 대규모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금융회사들이 임원들에게 고액의 보너스를 지급한 사실이 최근 드러나면서 미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국민들의 혈세로 금융회사들에게 '돈 잔치'를 베풀어줬다며 일제히 성토에 나섰다. 워싱턴 포스트.ABC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100만 달러 이상 고액 보너스를 받는 금융회사 임원들에 대해 특별세를 징수해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민들은 은행들의 과도한 주식투자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8%가 과도한 주식투자를 하는 은행들에 대해 세금을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백악관은 이런 민심에 즉각 반응을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1월 21일 대형 은행들의 투자에 대한 규제를 크게 강화하는 조치들을 발표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은행 때리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금융회사들의 '돈 잔치' 논란으로 성난 민심이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젠 중산층 끌어안기 적극 나섰다 경제난 해소 주력…의보개혁 속도조절 공화당 의원들과 이례적 공개 토론도 ▷대규모 경기부양책 무소속 이탈 백악관과 민주당의 또 다른 고민은 최근 들어 친 공화당으로 기울고 있는 무소속 유권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리느냐 하는 것. 전문가들은 지난해 11월 뉴저지, 버지니아 주지사선거에 이어 1월 매사추세츠 상원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잇따라 패배한 것은 무소속 유권자들의 이반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매사추세츠 선거의 경우, 등록유권자의 절반이 무소속이었으며 이들 중 대다수가 공화당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무소속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 특히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수가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한 것도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며 여기에는 무소속 유권자들의 반감이 한몫을 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정부의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작은 정부’를 지지해온 무소속 유권자들이 오바마 행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실망해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2008년 당시 오바마를 지지한 유권자들로 오바마로서는 향후 재선을 위해서는 이들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은 현재 무소속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정부의 일부 재정 지출을 동결하겠다고 밝힌 것도 무소속 유권자들을 겨냥한 조치로 보고 있다. 이 조치는 2011년부터 3년간 정부의 일부 재정 지출을 동결하는 안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규모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국방, 외교 등이 동결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이 같은 조치가 재정적자를 줄이는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보수층 일각에서 이 조치를 놓고 ‘알맹이 없는 껍데기’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밀실정치’ 논란 정면 돌파 오바마 대통령은 국정연설 이틀 후 볼티모어로 향했다. 공화당 하원의원 연례 연찬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의료보험 개혁, 세금정책 등 핵심 국정 의제들을 놓고 공화당 의원들과 1시간 30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를 놓고 미국 언론들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간 상황에 비유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과의 이날 만남은 공화당이 초청을 하고 백악관이 수락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백악관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원래 이 행사는 공화당 의원들이 지도부와 당내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로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날 토론은 미국의 주요 방송사를 통해 생중계됐다. 백악관이 TV 생중계를 조건으로 대통령의 참석을 제의했고 공화당은 비공개의 오랜 관행을 깨고 백악관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현직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과 텔레비전 생중계 토론을 벌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의료보험 개혁 논의과정을 둘러싼 논란에 정면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공화당은 민주당이 의료보험 개혁 논의과정에서 자신들을 철저히 배제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대선 당시 공약도 다시 끄집어내 문제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보험 개혁 논의과정을 C-SPAN방송을 통해 공개하기로 해놓고 약속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의료보험 개혁 논의가 민주당 지도부 몇몇의 ‘밀실정치’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며 비난의 공세를 높이고 있다. 백악관이 이날 만남을 텔레비전으로 공개할 것을 요구한 것도 공화당의 이런 비난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토론에서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이 같은 비난에 적극 대응했다. 공화당 의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한편 역으로 공격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공화당의 당파성을 질타하는 대목에서는 공화당 일각에서 자신이 추진 중인 의료보험 개혁을 ‘급진 좌파의 음모’로 몰아붙였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2년차 국정 운영 난항 예상 집권 2년 차 오바마 행정부 국정 운영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경제난 해소가 시급한 과제다.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 속에도 실업률은 여전히 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야당인 공화당과의 관계도 난제다. 의료보험 개혁 등 핵심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화당의 협력을 과연 끌어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여기에다 주변 정치환경은 더욱 어려워졌다. 매사추세츠 보궐선거 패배로 의회 내 민주당의 힘이 약화돼 독자적인 정책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의회가 선거모드로 들어가고 있는 점도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부담이다. 현재 민주·공화 양당은 11월 중간선거 대비한 전초전에 돌입했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은 4년 전에 빼앗긴 하원 다수당 지위를 되찾겠다는 각오로 총력전을 펴고 있다. 중대한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공화당이 순순히 협력할 지가 의문이라는 데 오바마 행정부의 고민이 있다. ■오바마 - 공화의원 토론서 오간 말 오바마 대통령은 1월 29일 공화당 하원의원 연례 연찬회에 참석해 공화당 의원들과 주요 정책들을 놓고 공개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은 8명의 의원들이 대표로 질문을 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정책 별로 핵심 쟁점들을 정리했다. ◇세금정책= 공화당은 전면적인 감세안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민주당은 소득계층에 따라 차별화된 정책을 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난에 허덕이는 서민들을 위해 공화당이 제안한 전면 감세안을 수용할 의사가 있는지?"(마이크 펜스.인디애나) "그 같은 감세안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워런 버핏 같은 백만장자에게 세금을 깎아줄 수는 없다."(오바마) ◇초당적 협력= 민주당과 공화당은 경기부양책 의료보험 개혁 등 핵심 정책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양당이 얼마나 초당적으로 협력했는지를 놓고 서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초선의원이다. 공화당은 초당적 협력을 가로막은 적이 없다. 초당적 협력을 막은 것은 상.하 민주당원들과 대통령이다."(재이슨 쉐이페츠.유타) "초선의원으로서 초당적인 협력을 위해 당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결국 양당은 초당적으로 협력을 해야만 한다."(오바마) ◇메디케어 삭감 논란= 민주당은 의료보험 개혁의 일환으로 연장자들에게 제공되는 메디케어의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에 공화당은 반대하고 있다. "정부 재정 지출에서 가장 큰 부담은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와 (연장자들을 위한) 메디케어.의료비용이다."(오바마) "공화당이 제안한 메디케어 개혁안의 핵심은 연장자들에게 의원들과 같은 수준의 의료보험을 제공하자는 것이다."(폴 라이언.위스콘신) "메디케어 삭감안은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 같은 존재다. 하지만 정부 재정 지출을 많이 줄일 수 있는 곳도 바로 메디케어 비용이다. 메디케어 삭감안을 둘러싸고 민주당은 무책임하다. 또는 연장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등 근거 없는 비방들이 난무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고 정책에 대한 논의도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오바마) 워싱턴 = 최준 특파원